생활과 취향
코코와 장수풍뎅이까지 태우고 떠난 여름휴가
울산과 부산의 처가 식구들을 만나고, 해운대 모래놀이와 산속 양봉장, 일산해수욕장을 지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가족 여름휴가 기록입니다.

Summary
한눈에 보기
- 딸의 방학과 잠시 여유가 생긴 프로젝트 일정에 맞춰 코코와 장수풍뎅이까지 온 가족이 울산으로 떠났습니다.
- 부산 해운대와 처남의 식당을 찾고, 장인어른의 산속 양봉장에서 아이들과 장수풍뎅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냈습니다.
- 예정에 없던 일산해수욕장에서 몇 년 만에 바다에 들어가 일 생각을 잠시 파도에 흘려보냈습니다.
딸의 방학이 시작됐고, 정신없이 돌아가던 프로젝트에도 잠깐 숨을 고를 틈이 생겼다. 이 기회를 놓치면 올해 여름휴가는 달력에서만 보고 끝날 것 같았다. 목적지는 울산과 부산. 처가 식구들이 있는 곳이다.
거리가 멀어 가볍게 다녀오기는 어렵지만, 아이들은 할머니 노래를 불렀고 어른들도 손주들을 보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모두 길을 나섰다. 사람만 탄 것은 아니다. 코코도 탔고, 아이들과 키우던 장수풍뎅이도 탔다. 트렁크를 열어보니 여행 짐이라기보다 작은 생태계의 이삿짐에 가까웠다.
첫날 일정은 이동, 도착, 뻗기
서울에서 울산까지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나니 첫날의 나는 사실상 기능을 멈췄다. 멋진 여행의 시작을 기대했지만 현실의 일정은 이동, 도착, 몸져눕기였다. 가족을 무사히 데려왔다는 것으로 첫날의 임무는 충분했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다음 날에는 처남이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해운대를 구경하고 아이들은 모래놀이에 완전히 빠졌다. 바다를 보러 간 어른과 모래를 파러 간 아이의 목적은 조금 달랐지만, 각자 원하는 여행을 한 셈이다.
저녁에는 처남이 매니저로 일하는 야키토리 백탄 해운대점에서 꼬치구이를 먹었다. 평소 가족 외식과는 분위기가 조금 다른, 제법 고급스러운 한 끼였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여름휴가에 제대로 왔구나’ 싶었고, 아이들 모래를 털어내느라 조금 전까지 진땀을 흘린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기도 했다.
곧 아빠가 될 처남에게
처남은 10월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아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이지만, 나는 이미 아빠라고 생각한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품는 순간부터 부모의 시간은 시작되는 것 같다.
앞으로 함께 고생할 아빠와 엄마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다.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대단한 답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잠은 생각보다 부족하고 걱정은 생각보다 많겠지만, 아이가 웃는 순간 이상하게 또 버틸 힘이 생긴다는 정도만 마음속으로 보탰다. 아빠의 선배라기보다 같은 편 한 명이 미리 손을 내민 기분이었다.
휴대전화 신호가 약해지자 머리가 맑아졌다
다음 날에는 장인어른의 양봉장을 찾았다. 은퇴 후 취미로 시작하신 일이 어느새 본업이 된 곳이다. 양봉장은 산꼭대기 쪽, 계곡물이 흐르는 깊은 곳에 있었다. 휴대전화 신호도 잘 잡히지 않았다. 평소라면 불편했을 텐데 이상하게 나는 이런 곳이 좋다.
연락은 뜸해지고 물소리와 벌 소리는 선명해졌다. 화면을 새로고침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곳에서, 오히려 내 머릿속은 조금씩 정리됐다. 회사 메신저가 울리지 않으니 계곡물이 대신 알림을 보내는 것 같았다. 내용은 늘 같았다. 잠깐 좀 쉬라는 알림이었다.
이곳에서 장수풍뎅이와도 이별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작은 친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아이들도 슬픔에 오래 머물기보다 즐겁게 작별 인사를 했다. 데려올 때는 사육장 하나가 짐이었는데, 보내고 나니 그 빈자리가 짐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일정표를 하루 밀어낸 바다
그다음 날에는 울산 일산해수욕장으로 갔다. 원래 나는 바다를 보는 쪽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저렇게 좋아하는데 혼자 모래사장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몇 년 만에 바닷물에 들어갔다. 가족의 성화는 때로 아주 강력한 수상 레저 동력이다.
막내가 좋아하는 수상생물도 함께 찾아보고, 모래사장에는 작은 어항도 만들었다. 아이들이 물과 모래를 오가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회사 일을 머릿속에서 잠시 지웠다. 해결하지 못한 일도, 내일 다시 볼 메시지도 그 순간만큼은 파도에 흘려보냈다. 파도가 실제로 처리해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잠깐 맡아주는 척은 해줬다.
애초 계획에 없던 해수욕 덕분에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일정표는 밀렸지만 가족의 표정은 훨씬 좋아졌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또 뻗었다. 이번에는 장거리 운전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놀았다는 증거라서 첫날보다 조금 뿌듯했다.
길었던 것 같고, 돌아오니 짧았던 휴가
다음 날 일찍 준비해 서울로 올라왔다. 떠나 있을 때는 꽤 긴 휴가 같았는데 집 문을 여는 순간 짧게 느껴졌다. 여행 가방에는 빨랫감이 늘었고, 휴대전화에는 다시 확인할 일이 쌓였지만 마음 한쪽은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코코와 장수풍뎅이까지 함께 출발했던 여름휴가는 그렇게 끝났다. 가족을 만나고,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나누고, 한 생명과 작별하고, 몇 년 만에 바다에도 들어갔다. 거창하게 삶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잠깐 멈춰 있었기에 다시 움직일 힘은 생겼다.
내일 또 열심히 살아보자. 다만 다음 장거리 운전 전에는 ‘도착 후 바로 일정’ 같은 무모한 계획부터 세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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